궁금한건 잘 참아




친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2003년부터 무기수 삶을 살던 김신혜(나이 41세)씨. 현장검증 직전부터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줄곧 무죄를 주장해왔다. 아버지가 사망한 2000년 3월 7일부터 무기징역형이 확정된 2003년 3월 23일까지 김씨에게 믿기지 않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아버지를 죽인 패륜범이 돼있었다고 했다.

이제 그가 다시 법정에 선다. 김씨에 대한 재심이 마침내 확정됐다. 구속된 지 18년, 무기수가 된 지 15년 만이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은 사법 사상 처음이다.

이전 재심 신청 과정에서 김씨를 변론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대법원 2부가 지난달 28일 친부살해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8년째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씨에 대해 재심을 최종 확정했다고 한국일보 보도를 인용해 2일 발표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김신혜씨 재심이 확정됐다.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서 곧 재판이 열릴 것이다. 재심개시결정은 2015년 말에 내려졌는데, 검찰의 불복으로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쳐야 했다. 내가 변호인으로 관여하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다”고 적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사건이라는 생각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꼭 정의로운 결과가 내려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18년 전 아빠가 죽은 그 날, 사건의 재구성

2000년 3월 7일 바닷가 작은 시골마을에 적막한 새벽이 내려 앉았다. 고요했던 마을은 금새 발칵 뒤집혔다. 버스정류장 앞에 50대 남성 시신 한 구가 발견된 것이다. 정황상 뺑소니로 보였지만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시신에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의문에 대한 답은 부검 결과가 나오면서 해결됐다. 망자의 사인(死因)은 ‘약물에 의한 사망’이라고 했다. 시신에서 다량의 수면제 성분과 알코올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사건 이틀 후 범인이 검거됐다. 놀랍게도 친딸 김신혜(당시 26세)였다. 그는 수면제 30알을 양주에 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앞으로 보험 8개가 가입되어 있는 사실이 드러났고, 살해계획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수첩도 발견됐다. 증거도 증언도 확실했다.

그 무렵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신혜가 아빠를 죽일만 했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내막을 살펴보니, 김씨의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해 언니가 대신 살해했다고 했다. 여동생 역시 경찰에 이같이 진술했다. 이제 살해동기까지 드러났으니, 김씨의 범죄는 확실해 보였다.

김신혜는 자백에 증거에 동기까지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현장검증을 앞두고 돌연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현장검증을 전면 거부하면서 “절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성추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의 무죄보다도 아버지의 불명예를 벗겨달라고 호소키도 했다.

그는 뒤늦게 이 모든 계획을 ‘고모부’가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사건 이후 고모부로부터 “(김씨의) 남동생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때문에 자신이 동생의 죄를 덮어쓰고자 거짓자백을 했다고 했다. 여동생 역시 고모부로부터 “아버지가 성추행했다고 진술해야 언니가 빨리 풀려난다”는 조언을 듣고 허위진술을 했다고 털어놨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따르면 정작 고모부는 18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증언이 오락가락이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가입된 보험은 모두 보험금을 탈 수 없는 상태였다. 수면유도제나 양주 같은 결정적 물증도 없었을 뿐더러 수사 과정 중 그녀는 경찰로부터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누드사진을 퍼트리겠다는 폭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영장도 없이 그녀의 집을 수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2인 1조의 규칙도 어겼다. 하지만 정당하게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며 문서를 조작했다. 문제가 된 살해계획서는 연극배우를 하며 글을 썼던 그녀가 써놓은 극 시나리오로 밝혀졌다. ‘완전’ 일치한다던 살해계획서는 어느 샌가 ‘근접’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인정해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판결에 불복했지만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각각 기각되면서 2001년 3월 23일 형이 확정됐다.

김씨는 계속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교도소 내 기결수들이 하는 노역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죄가 없는데 나라에서 시키는 노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 내에서는 그를 “독한년”이라고 부른다.

◇ 무기수 김신혜, 재심 대장정 시작

모두가 “한국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받은 살인사건의 재심은 가당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2015년 1월, 김씨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 법률구조단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경찰이 2인 1조 압수수색 규정을 어기고 영장 없이 김씨 집을 쳐들어가놓고도 허위로 수사기록을 작성했고,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는데도 영장 없이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 등을 재심 사유로 들었다. 같은 해 11월 18일 재판부는 “수사에 관여한 경찰관의 직무에 관련된 범죄가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경찰관 직권 남용 등의 이유로 재심 개시 결정을 하기는 하지만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때문에 김신혜의 형 집행을 정지하지는 않았다.

이후 재심 개시 절차에만 3년이 걸렸다. 마침내 대법원의 최종 결정까지 받아 진실을 다투게 될 전망이다. 법원은 ‘수사 과정 위법성’만 문제 삼았지만, 향후 재심 과정에서 김씨의 유·무죄를 가릴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재심 공판은 1심 재판을 맡았던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재심의 경우에도 일반 재판과 마찬가지로 검찰과 피고 한쪽이라도 불복할 경우 항고가 가능하다. 이후 대법원 판결까지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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